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성 전투 (문단 편집) ===== 흑운토령 탈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8765432.png|width=100%]]}}} || || 7월 17일, 제8사단 반격작전 상황도 || 반격 3일째인 17일인 이날 사단의 진출(進出)은 기호지세(騎虎之勢)로 전개되었다. 각 연대의 쾌속 진격과 미제5공군 및 한국공군의 연 15개의 편대가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했으며 미 제5 및 제12 양(兩)포병단의 포문이 일제히 열려 포효하는등 반격작전은 금성천변으로 압축되면서 마치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섬멸전을 연출케 하였다. 또한 이날 오전 6시 기준, 2군단의 진출선을 보면 우인접인 5사단은 구대리-성동리 선에서 진격의 발판을 굳히고 있었으며 좌인접 11사단은 추동선에서 삼현지구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군단은 반격을 가한지 단 3일만에 금성천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서 군단장 정일권은 중공군 제20병단의 저항력은 이미 쇠퇴하여 저지선(沮止線)을 금성천의 북안으로 이설(移設)할 것으로 판단해 이에따른 군단작전 제7호를 전 부대에 하달함과 동시에 "궤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섬멸적인 타격을 가함과 동시에 금성천을 초월공격하라"고 말하였으니 군단의 주력인 제8,제11,제5의 3개 사단은 이제 사단이 점령한 각 선에서 다시한번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이때 8사단 송요찬은 사단작명 제184호로써 각 연대의 임무를 하달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사단은 적을 구축(驅逐)하면서 금성천 넘어 대안으로 육박하려 한다. >2.제10연대는 7월 17일 20.00까지 목표 다,라를 탈취하라 >3.제16연대는 동일시부로 목표 마를 탈취하라 >4.제21연대는 동일시부로 목표 가, 나를 탈취하라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1-12-29T030450.563.jpg|width=100%]]}}} || || 7월 17일, 제8사단장 송요찬 소장이 흑운토령 반격작전 도중 피습당한 박격포 분대원들을 보기위해 달려 나가는 모습 || 여기서 각 연대별로 부여된 공격목표는 금성천을 2~2.5km에 위치한 연봉이다. 여기서 연대별로 보자면 먼저 21연대의 공격목표인 가, 나는 집실리의 동쪽에 연립하여 여문리 제하는 요부이며 그 다음 제10연대의 공격목표인 다, 라는 집실리의 서남쪽에서 별우지구를 옹위하는 요관이고 마지막 제16연대의 공격목표인 479고지는 죽동의 17번 도로를 감제하는 요소이다. 즉 전략적으로 굉장한 요충지이기에 이러한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사단을 지원하게 된 미 제5 및 제12포병단의 화력배정 * 제12포병단의 제73대대, 제10연대를 직접지원 * 제12포병단의 제75대대, 제16연대를 직접지원 * 제12포병단의 제50대대, 제21연대를 직접지원 * 미 제5포병단의 제100대대, 사단을 일반지원 * 미 제5포병단의 제987대대, 사단을 일반지원 한편, 명령을 받기 이전, 8사단의 전선상황은 제21연대 3중대 정면이 중공군의 공격으로 15분간의 교전 끝에 이를 격멸시키는 것과 수색중대가 중공군에게 공격을 받아 20분간 교전을 해 이를 격멸시킨 것 외에는 별다른 전투는 없었다. 그리고 각 연대들은 사단작명 제184명을 받아 곧바로 공격을 개시했고 이중 가장먼저 활동을 시작했던건 제16연대 제3대대였으며 그 다음은 제21연대 제1대대였다. 이때 제21연대는 사단의 우일선을 맡고있어 목표 가, 나의 탈환임무를 부여 받았고 연대는 오전 5시에 1, 3대대로써 주공을 맡게하고 2대대를 362고지까지 진출케하였다. 당시 2대대가 맡고있던 362고지는 금성천을 사이에 두고 472고지와 맞서 있었기에 연대주력이 공격하는 동안 엄호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으므로 2대대는 제5 및 6중대를 내보내 그곳에 주둔중인 중공군 1개 소대를 박살내고 동고지의 2개 연봉에 진지를 급편하도록 하였다. 또 3대대는 흑운토령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막고 있었는데 이는 다행히 우인접 제35연대가 제5사단의 우일선이 되어 진출선을 북상시켜 중공군의 측방충격을 우려할 필요도 없이 대대는 주공의 우일선이 되었다. 또한 596고지에서 진출하기 시작한 주공의 좌일선 제1대대도 금성천 변을 향해 출발했는데 여기에서 진출중인 양대대는 처음에 2개 분대 규모의 중공군이 들어와 교전을 치름과 동시에 이를 격멸시켰지만 596고지로부터 중공군 1개 중대 병력이 반격해 왔기 때문에 대대는 이들과 교전을 치렀고 11시 25분에는 그 규모는 2개 중대규모로 늘어나 교전 시간은 30분이 넘었다. 전투 결과, 중공군은 후퇴하였으며 대대는 앞으로 나가 목표 가,나의 배사면을 횡류하는 계간에 도착하게 되지만 그곳에 주둔중인 중공군 약 1개 대대 병력이 격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대대는 고지 정착면에서 근접항공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 근접항공지원에서 미 제5공군소속의 F-86 2개 편대가 전투현장에 출현하여 네이팜 폭격을 가하였으며 이에따라 공격 제1선의 4개 중대가 급히 돌격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제3대대장이 목표 나의 7부 능선에서 중공군에 의해 관통상을 입고 부대대장에게 대대지휘를 인계하게 되었으며 제11중대의 선임하사인 채성률 중위는 화기중대의 기관총 소대를 이끌다 부상당했고 10중대 3소대장, 황영제 소위는 2개 분대를 이끌어 화기중대와 함께 전진하다 중공군의 박격포탄에 의하여 전사하게 된다. 또 제3중대 제1소대장 최인호 소위 또한 3명의 결사대를 이끌어 특화점으로 육탄돌격하였다가 결국 오른쪽 손에 수류탄을 쥔채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이날 연대가 치른 혈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국군 4개 중대의 공격을 받은 중공군도 결국은 무너져 버렸고 이후 연대는 596고지를 탈환하게 된다. 물론 점령 직후 중공군이 1개 대대병력으로써 다시 공격해 왔기 때문에 결국 장기간 전투로 피로해진 대대는 철수 후, 다시 반격을 가해 19시 30분에 다시 재탈환하게 된다. 한편, 21연대의 공격이 성공하기 이전인 오전 4시, 21연대의 주진지를 인수 받고 와이오밍선에서 전벽을 굽히고 있던 제10연대는 사단의 명령에 따라 공격을 개시하여 제1대대와 2대대로써 목표 다,라를 탈환하도록 조정하였다. 따라서 제1대대는 목표 다를 즉, 연대의 우일선으로 제2대대를 목표 라를 탈환하도록 하는 좌일선으로 각각 편성하였고 이후 진출 도중 중공군 1개 중대의 공격만을 제외하면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은채 손쉽게 441고지로 도달했으나 이곳에서 목표 다,라는 쌍봉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배사면의 화망이 긴밀히 협조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즉, 중공군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441고지에 V자형으로 갈라진 두 줄기 사이에서 공격해 오는 10연대 각 대대를 상대로 완강하게 저항했으며 이때문에 접근로는 순식간에 화약냄새와 연기가 풍기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또한 양 대대의 진격이 가로막히자 연대는 근접항공지원으로 중공군을 타격했고 때문에 전투현장은 더욱 더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전투중인 양 대대들은 무수히 떨어지는 총탄을 뚫고 적진에 뛰어나가 육탄전을 전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장교들이 전사 및 부상당해 대대가 진출한 곳은 곧 혈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속된 육탄전 및 폭격과 사단의 포격지원 덕분인지 연대가 마주한 1개 대대의 중공군도 역시 결국 분산되어 무너져 버렸으며 그 후, 10연대는 중공군을 완전히 쫓아낸 뒤, 오후 9시에 목표를 전부 장악하여 반격작전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전날, 760고지 8부 능선에서 공격을 멈춘 8사단 16연대는 이날 오전 4시에 공격을 개시하여 760고지를 무혈입성하였는데 이는 우인접 5사단의 반격으로 인해 백암산-1118고지 선의 주둔중인 중공군이 후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16연대는 사단작명 제184호에 따라 곧바로 금성천을 도하하고 세현리에 집결한 다음 목표 마에 대한 공격대형을 갖추었으며 목표 마, 즉 479고지에 대한 공격을 신속히 진행하였다. 이때 연대는 목표 마는 17번 도로를 감제하는 도로이기에 중공군으로부터 완강한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약 1개 중대규모의 경미한 저항만 부딪쳤을 뿐 연대의 주력은 신속히 진격해 19시에 목표 마를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금성천을 도하해 주저항선 절반 이상을 탈환한 8사단은 집실리-죽동선에서 진출선을 확보하고 중공군의 역습에 대비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사단은 진출선에서 물러나가야 했는데 왜냐하면 군단의 주저항선이 현 군사분계선인 금성천 남안으로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연대는 아쉬움만 남긴채 뒤로 물러나가게 되었고 이후 사단은 7월 20일에 좌측방의 596고지를 7사단 3연대에게 넘겨주고 우측방에 있는 462고지 지역을 6사단으로부터 인수한 뒤 금성천에서 중공군과 대치하다 휴전을 맞이하게 된다. 휴전 직전 8사단 각 연대의 배치상황은 이와 같다. >제16연대[* 사단 우일선] >연대OP: 819고지 >주저항선: 구대리-여내곡간 >우일선: 제1대대 >좌일선: 제2대대 >예비대: 제3대대 >예비대 배치지점: 장대-819고지-외성동리 >제10연대[* 사단 좌일선] >연대OP: 흑운토령(851고지) >주저항선: 여곡리-방성곡간 >우일선: 제3대대 >좌일선: 제2대대 >예비대: 제1대대 >예비대 배치지점: 흑운토령(851고지) >제21연대[* 사단예비대] >연대OP: 수동령 >주저항선: 백암산-1118고지 >우일선: 제1대대 >중앙일선: 제3대대 >좌일선: 제2대대 해당 전투에서 입은 8사단 피해와 전과는 다음과 같다. 8사단 피해[* 출처: 金城遠南地區撤收及別偊地區反击作战] || 구분 || 전사 || 부상 || 실종 || || 16연대 || 77 || 447 || 441 || || 10연대 || 79 || 462 || 309 || || 21연대 || 147 || 1,098 || 372 || || 사령부 || 9 || 34 || 14 || || 합계 || 312 || 2,041 || 1,136 || 8사단 전과[* 출처: 戰鬪詳報, 步兵第八師團] || 구분 || 확인사살 || 추정살상 || 포로 || || 16연대 || 1,976 || 3,647 || 6 || || 10연대 || 2,925 || 3,903 || 10 || || 21연대 || 2,831 || 4,238 || 23 || || 합계 || 7,732 || 11,788 || 39 || 이때 8사단이 호출한 항공지원은 다음과 같다.[* 출처: 金城遠南地區撤收及別偊地區反击作战] || 횟수 || 대수 || || 52회 || 286대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